한국디지털경제신문 우혜진 기자 | 주요 시중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제화 움직임에 맞춰 발행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와 접촉하며 기술 검증 단계까지 나아가는 등 본격적인 사업화를 염두에 둔 행보가 감지된다.

서클과 잇단 회동 추진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은행은 이달 방한하는 히스 타버트 서클 사장과의 면담을 모두 검토 중이다. 서클은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USDC’를 발행하는 글로벌 선도 기업으로, 국내 은행권이 가상자산 시장 대응 차원에서 협력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은행권은 “구체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NDA(비밀유지협약) 체결로 인해 외부 공개는 어렵다”면서도 “시장 경쟁 상황을 고려할 때 서클과의 논의를 마다할 이유는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복수 은행이 동시에 참여하거나 금융지주 고위 임원이 배석하는 방식의 회동도 거론된다.

논의 주제는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의 국내 유통·송금,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 규제 환경 변화 대응 등이 될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국내외 규제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정보 교환 차원의 의미도 크다”고 설명했다.

KB금융, ‘스테이블코인 분과’ 상설화

국내 은행들의 준비 작업도 발빠르다. KB금융은 지난 6월 그룹 차원의 ‘가상자산 대응 협의체’를 발족해 은행, 카드, 증권, 자산운용 등 계열사가 함께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특히 협의체 내 ‘스테이블코인 분과’를 상설 조직으로 전환, 제도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KB 측은 “정책 당국이 제도화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비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한, 자체 결제 실험…‘땡겨요’ 도입 검토

신한은행은 은행연합회를 통한 공동 발행 논의에 참여하면서도 자체적인 기술 검증을 병행 중이다. 특히 배달앱 ‘땡겨요’에 스테이블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연동하는 방안을 사전 검토 중이며, 향후 블록체인 기반 ‘프로그래머블 머니’ 도입을 통해 소상공인 지원 등 특정 사용처 한정 결제 서비스까지 모색하고 있다.

하나·우리은행, 글로벌 파트너십 및 상표권 확보

하나금융은 제도·사업·인프라 분석을 중심으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가능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그룹 워킹그룹을 운영하며 커스터디, 토큰증권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연구를 병행하고 있으며, 지난해 글로벌 커스터디 기업과 합작한 ‘비트고코리아’를 통해 수탁업 인허가도 추진 중이다.

우리은행 역시 ‘디지털자산팀’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현재까지 약 20건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출원했으며, ‘오픈블록체인·DID 협회’ 등 은행 공동 협의체에도 참여해 발행·유통, 기술 검증 방안을 논의 중이다.

업계 “빅테크와 경쟁 불가피”

다만 은행권은 빅테크·핀테크 기업의 움직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격이 은행 외 민간 기업에도 허용될 가능성이 커, 제도화 시점에 따라 주도권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은행들은 규제 적합성과 신뢰성을 무기로 대응하겠지만, 시장은 속도와 편의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빅테크와의 경쟁 구도가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