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디지털경제신문 우혜진 기자 |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해외 거래소와 오더북(호가창)을 공유한 것을 두고 금융당국이 법적 절차 준수 여부를 들여다보고 있다. 시장 유동성 확대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자금세탁방지(AML)와 고객정보 보호라는 규제 측면에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은 최근 빗썸이 호주의 가상자산 거래소 스텔라와 오더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특금법상 요건을 제대로 이행했는지를 조사 중이다. 당국 관계자는 23일 “절차적 충분성을 지켰는지 검토하고 있으며, 법 위반 사항이 드러나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빗썸은 지난 22일 테더(USDT) 마켓 개설과 함께 스텔라와 오더북을 공유한다고 공지했다. 오더북 공유는 거래소 간 매수·매도 주문을 함께 운영하는 방식으로, 서로 다른 거래소 고객이 마치 하나의 플랫폼에서 거래하는 것과 유사하다. 이 경우 유동성이 확대돼 투자자 편의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현행 특금법은 관련 절차를 거치지 않은 거래소 간의 매매·교환 중개를 엄격히 금지한다.
법에 따르면 국내 사업자가 해외 거래소와 주문을 공유하려면 상대 거래소가 해당 국가에서 인가·등록·허가를 받은 사업자인지를 입증해야 하며, 자금세탁방지 의무도 동일하게 이행해야 한다. 또한 다른 사업자의 고객과 거래할 경우, 고객 확인(KYC)과 거래 정보 접근권한을 확보해야 한다. 즉 빗썸이 스텔라와 오더북을 공유하려면 호주 금융당국이 발급한 인허가 증명, 스텔라 이용자에 대한 KYC 확인 방법, 주문·체결 정보 접근 체계 등을 FIU에 제출해야 한다.
빗썸 측은 “금융당국과 협의해 절차를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당국은 제출 서류와 절차 이행이 미흡했다고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에서는 개인정보 이전 문제가 현실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국가가 내국인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넘어가는 것에 민감하다”며 “빗썸이 호주 가입자의 신원확인 자료와 거래 데이터를 단기간에 국내로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는 단순히 빗썸과 스텔라 간 협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가상자산 시장이 성숙해가면서 글로벌 거래소 간 주문 공유, 유동성 풀 결합 등 다양한 협업 모델이 등장하고 있는데, 국내 규제가 이들 신사업 모델을 어떻게 다룰지가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편익과 시장 효율성을 고려하면 해외 거래소와의 연계가 필요하지만, AML과 개인정보 보호의 국제 공조 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규제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당국은 빗썸의 사례를 계기로 국내 거래소의 해외 협력 전반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재정비할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안이 향후 거래소 간 연동 서비스의 제도화 여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